저는 국내 시가총액 12위, 업계 부동의 1위, 그룹 내 연봉 3위, 보너스만 한 해 1500만원 주는 회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놀랍지요.
주변을 둘러보면 그 좋다는 명문대 출신의 동기들이 수두룩 빽빽하고, 말로만 듣던 억대 연봉자들이 발에 채입니다. 평생을 모아도 집 한채 사기 힘들다는데, 이곳엔 종부세 때문에 집을 팔아야 했던, 그래서 지난 노무현 정권이 저주스러웠다던 선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요, 스물 일고 여덟 먹은 나이 어린 동기들이 벌써부터 자기 여동생 같은 계집애들에게 수십만원을 주고 매춘을 합니다.

채용 설명회를 하러가면 구름 떼같이 많은 졸업 예정자들이 줄을 섭니다.
연봉 얘기에 숨을 쉬지 못하고,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신입 사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러가면 다들 우리는 이제 성공했다라는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평생 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고로 성공했다라는 표정을 합니다.
가족과 친지와 친구와 선후배들은 모두 부러워합니다.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그리고 원래 졸부가 아니고서야 돈으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김호열은.
부러움의 대상이요, 롤모델이며, 바람직한 아들이고, 성공한 청년입니다.
이 모든게 돈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고,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고, 어떤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통장으로 들어오는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 뿐입니다.

입사 당시에는 꿈이 있었지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훌륭한 조직이라고 하는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기업은 성공의 법칙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노력하고 성장하자. 공부하고 배워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자.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습니다.

그 동안 선배들이 가르치고, 조직에서 배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윗사람 말에는 절대로 토를 달지 말아라.
알아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해라.
말이 안되도 참아라. 힘들어도 참고, 불합리해도 참아라.
인생을 모두 바쳐 회사를 위해 충성해라.
일 열심히 하는 놈보다 회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놈이 되어라.
과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과가 전부다.
독야청청하려고 하지 마라.
술자리는 빠지지 말아라.
술자리 다음 날은 일찍 출근해라.
술을 못마시겠으면 그만 둬라.
술은 곧 인생이다.
일 못하는 놈은 용서해도 술 못마시는 새끼는 용서 못한다.
자기 건강 챙기고, 자기 생활 챙기고, 술 안마시면 그건 조직에 대한 희생이 부족한거다.
내가 너를 끌어올리진 못해도 확실히 못올라가게 할 수는 있다.
사내정치는 중요하다.
라인을 잘타야 한다.
출근 빨리 하고 퇴근 늦게 해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소리들 뿐입니다.
저런 의미없는 것들이 어떻게 당연하게 인식되는지도 알 수 없고, 또 저런 농담 같은 소리를 진심을 담아 하는 선배라는 분들도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기들 대부분은 불만은 있으면서도 충실히 행동합니다. 저마다 조금 더 인정받고, 조금 더 빨리 승진하고, 조금 더 많은 돈을 벌려는 것이겠지요.
저라고 덜 인정받고 덜 승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런 냄새나는 짓들을 하며 내 삶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라고 배운적도, 그러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사담당자를 만나 "퇴사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지난 주의 일입니다.
"업무와 연관되지 않은 일들로 힘이 듭니다."라고 하자,
"나도 안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나 똑같은 문제점은 갖고 있다. 다른 곳으로 가도 똑같을 것이다"하고 답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방법이 생길것이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 이상 술을 마시진 않습니다. 7시 30분이면 퇴근을 해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에 대해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오지만, 남은 사람들은 술을 마십니다.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십니다.
더러는 유흥을 즐깁니다.
교회의 장로와 집사를 하는 인간들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 룸싸롱에 갑니다.
아내와 각방을 쓰고, 자식이 무시를 하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면서
집에 들어가기 싫은건지, 그냥 꿈이고 인생이고 희망이고 삶이고가 없는건지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마십니다.
변한 것은 그 자리에 제가 없다는 것 뿐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렇게 일찍 집에 가면 뭐를 하냐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그림도 그리고요. 운동도 합니다."라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무도 서로가 정말 행복한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성공을 하기 위해, 더 인정받기 위해 회사에 머무르고, 윗사람과 술을 마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매춘에 관심이 없습니다.
유흥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술은 원래 마시지 않았고, 골프나 당구도 쳐본적 없습니다.
넓은 집, 안정적인 노후도 필요치 않고
외제차와 고급 양복도 없어도 됩니다.

제게 의미있는 것은
조금 더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어서, 어머니를 위해 더 많은 곡을 연주하는 것.
주말에 비올라를 연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들려주는 것.
더 나은 그림을 그려서 누군가를 좀 더 행복하게 하는 것.
다시 운동을 시작해서 군살없이 보기 좋은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필요치 않은 것은 사지 않고, 의미없는 시간은 보내지 아니하고,
거짓 감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쓸데없는 일로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것.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세달 정도는 여행을 하는 것.
쫓기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꼭 돈이 없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고,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게 뭔 소린지. 하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거지같은 회사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입니다.
그 좋다는 회사에 들어와, 일년 반만에 거의 7천만원이 되는 돈을 벌은 결과가
엉망진창이 된 정신과 육체입니다.

나는 이제 슬슬 내 삶을 살 생각입니다.
남들이 좋다는 길은 내 길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10/05/08 00:48 2010/05/0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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